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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셀비(Todd Selby), 취향의 흔적을 기록하는 사람

by 우주베리 2025. 7. 3.

집이 곧 자기소개서? 토드 셀비가 말하는 공간의 미학

 

사진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로 활동 중인 토드 셀비(Todd Selby)는 '사람이 사는 공간'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미학을 구축해온 인물이다. 그는 일반적인 인테리어 촬영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을 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쇼룸 같은 집이 아니라, 사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 개성과 취향이 뒤섞인 현실적인 삶의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다. 덕분에 그의 작업은 보다 솔직하고 생동감 있다.

 

토드 셀비가 처음 주목받은 계기는 2008년 시작한 웹사이트 'The Selby'다. 이 사이트에서 그는 다양한 창작자,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의 집을 방문해 촬영하고, 짧은 인터뷰와 함께 소개했다. 특유의 친근한 시선과 감각적인 사진, 손글씨로 적은 질문지, 그리고 일러스트가 더해진 콘텐츠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곧 책으로도 출간되며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작품은 인물 중심이 아닌 ‘공간 중심’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셀비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그 사람이 만든 환경을 통해 삶의 태도를 암시한다. 집 안의 물건, 책장에 꽂힌 책, 냉장고 속 식자재 하나까지도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그의 시선은 날카롭기보다는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다. 완벽한 구도나 조명을 추구하기보다, 순간의 분위기와 실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는 태도가 돋보인다.

 

 

또한 셀비는 사진 외에도 수작업 일러스트 작업을 병행하는데, 이 역시 그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때로는 촬영한 공간 위에 삽화를 덧그려 유쾌한 리듬감을 더하고, 때로는 음식이나 사람의 모습을 만화처럼 표현해 보는 재미를 준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감성을 고수하는 그의 방식은, 시대 흐름 속에서도 독립적인 시각을 유지하고자 하는 태도처럼 느껴진다.

 

결국 토드 셀비의 작업은 단순한 인테리어 기록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라고 할 수 있다. 겉보기엔 다소 엉성하고 자유분방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엔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녹아 있다. 기획에서 촬영, 일러스트, 편집까지 모두 직접 해내는 그의 다재다능함도 주목할 만하다. 그의 사진을 보면, 어떤 삶은 집 안 구석구석에도 이야기가 깃들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토드 셀비의 작업을 보면,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포장되지 않은 일상, 각자의 취향이 가득 담긴 공간은 단순히 보기 좋다는 감상보다 훨씬 깊은 여운을 준다. 그는 멋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멋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그의 시선은 요즘처럼 타인의 삶을 재단하기 쉬운 시대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 덕분에 셀비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내 일상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충분히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기록하고 바라보는 그의 방식은, 결국 우리 모두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몇 년 전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토드 셀비의 전시 The Selby House: #즐거운_나의_집을 관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전시 제목을 들었을 땐 다소 장난스럽다고 느꼈지만, 막상 전시장에 들어서고 나서는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에너지가 꽤 인상 깊었다.

 

전시는 사진, 일러스트, 설치작품이 뒤섞인 셀비 특유의 다채로운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무엇보다도 공간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놀이판처럼 꾸며놓은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그의 사진 속 피사체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칼 라거펠트나 크리스찬 루부탱처럼 이름을 아는 유명 인물들의 집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공간에 놓인 책, 조명, 식기류 같은 소소한 오브제들이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누군가의 집을 이렇게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예술의 언어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의 작업실과 침실을 실제처럼 재현해놓은 공간, 손그림과 낙서가 가득한 벽면, 정글룸에서 울려 퍼지던 이상한 사운드까지. 모든 것이 계획된 듯하면서도 자유로웠고, 장난기 넘치면서도 철학적이었다. 가장 감탄했던 건 그 다양함 속에서 하나의 일관된 태도가 느껴졌다는 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모든 공간에 녹아 있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효율적이고 깔끔하게 정돈되기를 요구받는 시대에, 셀비의 시선은 어쩌면 더 가치 있어 보인다. 그는 우리가 종종 지나쳐버리는 일상의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어떤 창의성은 거창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물건, 또는 그 물건이 놓인 방식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 전시는 보여주었다.

 

단순히 한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경험이 아니라 내 책상 위의 작은 혼란, 책장 속에 꽂힌 오래된 책 한 권, 아무렇게나 걸쳐놓은 옷들에도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셀비 덕분에 잠시나마 인식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