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상상력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책의 거장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은 영국의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본래는 의료 일러스트레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이후 광고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그림책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1976년 첫 그림책 출간을 시작으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그의 그림책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을 넘어, 깊이 있는 메시지와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다. 또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배경 그림이나 인물들의 표정에서 예상치 못한 재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유머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웃음과 함께 기분 좋은 여운을 남겨준다.
고전미술과의 연결
그의 작품 속에는 고전 회화와 미술사를 오마주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미술관에 간 윌리>에서는 실제 명화들이 등장하고, <숲 속으로>에서는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스타일이 녹아 있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친숙하게 소개하는 동시에 어른들에게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보는 재미를 준다.
사회적 메시지와 심리적 통찰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넘어, 가족 관계, 정체성, 소외감, 빈부격차 등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와 심리적 통찰을 담고 있다. <돼지책>은 가사 노동의 불균형을 비판하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고, <고릴라>는 아버지와의 소통을 갈망하는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러한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은 단순한 아동 도서를 넘어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나는 딸의 동화책을 사 주려 서점에 갔을 때 그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되었다. <우리 엄마>라는 동화책이었는데 내가 엄마의 입장이 되니 제목만 보고도 어떤 내용일지 너무 궁금해서 구입을 하게 되었다. 딸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왜 내 마음이 찡한 건지... 아이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이 이렇게나 멋지고 대단하게 그려졌다는 게, 같은 엄마로서 울컥하게 만들었다.
책 속에서 아이는 엄마를 '요리사, 우주비행사, 정원사, 슈퍼히어로'로 묘사한다. 실제로 나도 아침에는 전쟁 같은 등원 준비를 하고, 낮에는 집안일과 업무 사이에서 뛰어다니며, 밤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의 학습활동을 봐준다. 그런 내게 아이는 “나는 엄마가 너무 좋아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순수한 믿음이 얼마나 큰 힘인지, 평범한 엄마의 일상이 아이에게는 얼마나 특별하게 비치는지를 유쾌하게 보여준다.
집안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고,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지만 어느 순간엔 내가 진짜 이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엄마의 모습도 좋았지만, 평범한 옷차림의 모습에서도 충분히 사랑이 묻어났다. 딸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서로 껴안고 웃고, “우리 엄마도 최고야”라는 말을 들었을 땐 괜히 뿌듯하고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 고마운 책이었다.
아이는 내 부족한 모습을 ‘완벽함’으로 포장해주고, 나의 하루하루를 ‘특별한 모험’으로 기억해 준다. 때로는 지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이의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이 의미가 있어진다. 오늘도 나는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의 세상을 지켜주는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