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전시를 다녀왔다. 호주 출신 작가 엘리자베스 랭그리터의 작품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그림 앞에 서자마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장난스러운 구도가 어린 시절의 감성을 톡 건드리는 듯했다.
엘리자베스 랭그리터는 호주 시드니 북부 해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대 미술가다.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비교적 늦은 시기였지만, 그녀의 작품은 곧바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헬리콥터 뷰(helicopter view)처럼 풍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와 팝아트적인 색감, 그리고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붙여 만든 입체적인 피규어들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한 수영장 풍경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헬리콥터 뷰로 바라본 미니어처 세상
랭그리터의 그림은 대부분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영장, 해변, 들판, 공원 등 일상의 공간을 헬기에서 내려다보듯 그려내며, 마치 도시 모형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시점은 마치 내가 전지적 시점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입체적인 텍스처와 손맛
그녀의 작업은 단순히 평면에 그리는 것이 아니다. 유화의 두껍고 풍부한 질감을 살려 그림에 물리적인 존재감을 부여하며, 이는 빛과 색채의 효과를 더욱 극대화하는 느낌을 준다. 보통 배경은 평면이지만 그 위에 붙은 인물이나 소품은 입체적인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고, 붓이 아닌 나이프로 물감을 두껍게 올린 후 하나하나 피규어를 손으로 빚어 붙이며 완성해 나간다. 그래서인지 작품 하나하나에 작가의 정성과 따뜻한 손길이 느껴지는 듯 하다.
행복한 순간의 기록
랭그리터의 그림은 일상을 주제로 하되, 유난히 밝고 경쾌한 것 같다. 수영장 안에서 뛰노는 아이들, 비치 파라솔 아래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 풀밭에서 요가를 즐기는 군중 등 그녀의 시선은 늘 '행복한 순간'에 머문다. 보는 사람도 괜스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이번 전시도
엘리자베스 랭그리터의 <매일이 휴가> 전시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주는 선물 같은 전시였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파란 물빛의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위로 수십 명의 피규어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몸짓이나 자세에서 생생한 감정이 느껴졌다. 아이가 물장난을 치는 모습, 튜브 위에서 쉬는 모습, 가족이 단체로 수영하는 모습까지... 그 어떤 작품도 반복되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작품은 ‘Beach Bliss’라는 이름의 대형 캔버스였는데, 해변의 구석구석을 점점이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나만의 여름휴가를 되새기게 했다. 사진처럼 정교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런 '비현실적 디테일' 덕분에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된 것 같다. 나도 저 안에 한 점으로 섞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즘같이 더운 여름날 직접 바다속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을 통해 여름휴가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전시장 규모가 작아 일부 작품은 서로 밀집되어 있었고, 후반부로 갈수록 유사한 구도의 작품이 반복되어 집중력이 떨어졌다. 비록 전시 기간이 길지 않지만, 그녀의 작품을 통해 잠시나마 삶의 여유를 찾고 싶다면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기간: 2025년 5월 1일(목) ~ 2025년 9월 28일(일)
장소: MUSEUM209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 3층)
시간: 화요일 ~ 일요일 : 10:00 ~ 19:00 (월요일 휴관,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운영)
티켓: 성인 18,000원/청소년 어린이 15,000원/특별할인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