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파티, 색채와 환상을 빚어내는 현대 미술가
니콜라스 파티는 스위스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로, 회화와 조각, 설치미술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인물이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인 파스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독창적인 색채 감각과 독특한 형태로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실험을 넘어, 관람자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경험을 하도록 이끈다.
대담한 색채의 힘
원색에서 파스텔 톤까지 폭넓게 사용하는 그는 화면 전체를 강렬한 색으로 채우며, 색이 만들어내는 정서적 울림을 강조한다. 색이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과 공간을 지배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 느껴지게 한다.
인물과 자연의 단순화된 형태
그의 인물화나 풍경화는 복잡한 디테일을 걷어내고 단순화된 형태를 택한다. 얼굴은 기묘하게 매끈한 표정으로 표현되고, 나무나 산은 기하학적 구조를 닮은 모습으로 재현된다. 이 단순화 덕분에 관람자는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색과 분위기에 집중할 수 있다. 동시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파스텔 기법의 현대적 재해석
니콜라스 파티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파스텔을 회화의 주요 매체로 다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18세기 유럽에서 사랑받던 파스텔은 현대에 들어 상대적으로 주류에서 멀어졌지만, 그는 이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새롭게 풀어냈다. 파스텔 특유의 부드러운 질감과 밀도 있는 발색을 활용해 평면적이면서도 몽환적인 화면을 만들어낸다. 이 재해석은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독창적으로 만든다.
2023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니콜라스 파티 전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전시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색이 가진 물리적인 힘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회화 전시에서는 작품의 주제나 형태에 먼저 시선이 머무르지만, 이번 전시는 색이 먼저 관람객을 감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이 빛과 색의 파도처럼 구성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현실의 감각을 잠시 잊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 속 인물들은 눈, 코, 입이 단순하게 표현된 얼굴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그것은 무표정이 주는 차가움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감정을 담을 수 있는 비어 있음 같았다. 그 비어 있음 덕분에 나는 자신만의 감정을 작품에 투영할 수 있었고, 보는 사람들도 각기 다른 해석을 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그 얼굴들 속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 불안과 설렘,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향수를 동시에 떠올렸다.
자연을 표현한 작품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감각을 자극했다. 산은 기하학적인 구조물처럼 단순화되었고, 나무는 동화 속 배경처럼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색의 배치가 워낙 대담하고 생생했기때문에, 그 단순화가 오히려 더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한 것 같다. 실제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남아 있는 풍경의 잔상 같은 느낌이었다.
이 전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파티가 전시 공간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다루었다는 것이었다. 벽면 전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어 있었고, 벽화와 회화, 조각이 어우러지며 전시장은 하나의 완결된 공간 작품이 되었다. 관람객은 단순히 그림을 '본다'기보다 작품 속을 '걷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호암미술관의 자연 환경과 어우러져, 건물 안팎이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업처럼 이어진 것도 특별했다.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은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기억 속 어딘가에서 본 듯한 풍경과 표정이 담겨 있어 마치 꿈에서 본 장면처럼 명확하지 않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는 이미지였다. 나는 그의 색채 앞에서 잠시 현실을 벗어나 내면의 기억과 상상을 탐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한 회화 전시가 아니라 색과 형태, 그리고 공간 전체를 경험하게 하는 전시였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고, 낯설지만 따뜻한 그 세계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