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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과 동화의 마법, 나탈리 레테(Nathalie Lete)

by 우주베리 2025. 9. 10.

색채와 상상의 향연

나탈리 레테는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다문화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파리 장식미술학교에서 패션과 텍스타일을 전공했으며, 이후 일러스트레이션, 페인팅, 세라믹, 텍스타일, 인형 제작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을 이어왔다. 그녀의 작품은 회화적 감성과 공예적 실험이 결합된 독특한 결과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다.

 

동화적 판타지와 빈티지 감성

그녀의 그림은 어릴 적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랑스럽고도 기묘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동물, 꽃, 인형 같은 친근한 소재를 즐겨 사용하지만 단순히 귀엽거나 아기자기한 세계에 머무르지 않고, 약간의 기묘함과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낸다. 또한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감, 손맛이 느껴지는 붓질, 그리고 약간은 투박하면서도 따뜻한 형태감이 있다. 빈티지 포스터나 민속화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색채 조합과 패턴이 작품에 향수를 더하며, 동시에 현대적인 유머와 장난기를 담아낸다.


2016년 여름,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열린 나탈리 레테의 전시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마치 한 편의 동화책을 실제 공간 속으로 옮겨 놓은 듯한 전시였는데, 일반적인 갤러리의 차가운 분위기 대신 아늑하고 다채로운 색감이 가득한 방 안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작품은 회화뿐만 아니라 오브제, 텍스타일, 도자기, 심지어는 인형에까지 확장되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거대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벽면을 가득 메운 화려한 회화들이었다. 꽃과 동물, 소녀가 등장하는 그림들은 어린 시절의 꿈과 기억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속에는 단순한 향수만이 아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기묘한 분위기가 함께 담겨 있었는데, 그것이 나탈리 레테 작품의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귀엽고 따뜻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편안하지는 않은 이중적인 감정이 작품 속에 녹아 있어 여운이 남는 듯하다. 

또한 선명한 빨강, 파랑, 초록색 등이 특유의 빈티지한 색상을 많이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부담스럽거나 과하지 않았다. 그녀의 색감은 어린 시절의 원초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동시에 성인이 되어 경험한 복합적인 감정을 함께 담고 있는 것 같다.

작품 속 동물들은 단순한 귀여움에 머물지 않았다. 토끼는 사람처럼 옷을 입고 책을 읽고 있었고, 고양이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서 작품을 보는 내내 미소를 짓게 됐다. 

전시장 한쪽에는 세라믹과 오브제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는 평면 회화에서 보던 색감과 패턴이 입체로 확장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접시, 컵, 인형, 쿠션 등 생활 속 물건들이 그녀의 손을 거치면 모두 예술 작품이 되었다. 특히 세라믹 접시 위에 그려진 꽃과 동물들은 마치 오래된 유럽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보물처럼 보여서 너무 소장하고 싶어졌다. 

이번 전시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유중 하나는 전시 공간의 연출이 인상 깊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처럼 꾸며진 공간 속에 작품을 배치해 관람객이 그 안에 들어가 생활하는 듯한 몰입감을 주었다. 벽지, 가구, 조명까지 모두 나탈리 레테의 세계관에 맞춰 디자인되어 있었고, 그 속에서 작품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 

전시를 마치고 나오는 길, 기념품 숍에 들렀다. 거기에는 전시에서 본 패턴과 캐릭터들이 담긴 머그컵, 엽서, 에코백이 가득했다. 나 역시 작은 엽서 한 장을 샀다. 집에 돌아와 그 엽서를 책상 앞에 붙여두니 매일 동화속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은 것 같다.